잡동사니

톨스토이 - 그 위태로운 위대한 여정

깸뽕 2021. 1. 26. 09:01

 

일리야 레핀이 그린 톨스토이

"아 정말 돌것다. 이 주체할 수 없는 성욕 땜시.

이걸 어케 풀어야 하냐... 체홉아 나 좀 도와주라"

톨스토이의 편지

70이 다 되어 가는 위대한 문인은 까마득한 후배, 그것도 결핵으로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안톤 체홉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1880년대 중반부터 톨스토이는 작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1860~1904)를 아껴 그의 장례식(모스크바)에도 참석할 정도였고 체홉은 그의 영향을 받아 시베리아, 사할린까지 마차로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욕망과 자책감, 톨스토이가 평생을 통해 괴로워했던 문제가 성욕이라면 믿겠어요. 톨스토이의 작품에는 ‘속세를 못 떠나는 톨스토이’와 ‘금욕적인 성인으로서의 톨스토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분열된 자아가 계속해서 싸우는 구도죠.

 

때문에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 금욕주의를 택한 거죠. 말년에 쓴 <악마, 1889>에서 보듯 정말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죠. 성욕을 자제하지 못한 주인공이 파멸의 길로 빠지듯, 자신을 채찍질하는 톨스토이. 하지만 여전히 색과 속(俗) 저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

Lev Tolstoy 톨스토이( 1828~1910) : 야스나야 폴랴냐의 백작

톨스토이를 신처럼 경외했던 막심 고리키는 "그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영웅이었다. 용감했으나 야성적이었고 완고했으며 어린아이 같았다."라고 말합니다. 당시 러시아에는 두 명의 짜르(황제와 톨스토이)가 있다는 말이 그의 위상을 말해 줍니다. 그런 그가 왜 유독 아내한테는 혹독한 비판과 이중인격자라는 모독을 당했을까요.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 일리야 레핀 Ilya Efimovich Repin

Ploughman. Lev Nikolayevich Tolstoy in the ploughland. 1887

1862년 34살의 다소 늦은 나이에 당시 낭랑 18세의 소피아(1862–1919)와 결혼합니다.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자신의 15년간의 과거를 적은 일기를 소피아에게 줍니다. '읽어라~'라며.

그 일기에는 도박으로 수많은 재산을 날렸고 온갖 여자들; 집시, 창녀, 어머니 친구들의 농노들과 관계한 사실은 물론 심지어 사생아까지.. 황당한 소피아, '어쩌라고.. 날까지 잡았는데' 며 웁니다. 그런 그녀에게 "결혼은 신성한 것, 비밀이 있음 안되잖여~"하며 "흠, 흠.. 과거는 과거일 뿐~" 이럼 시로. 그럼 말을 말든가 다시는 딴짓 안 하겠다는 맹세도 아니고.

도스토옙스키도 결혼 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내의 반지도 전당포에 잡힐 정도로 도박에 빠져 도박빚에 쫓겨 쓴 글이 '죄와 벌'이라죠.

톨스토이 / 소피아

톨선생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에게 투영합니다. 레빈도 역시 자신의 방탕한 과거와 무신앙을 고백한 일기장을 '키티'에게 건네고 용서받는다. 레빈은 톨스토이의 분신이죠. 아내 소피아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재능만 빼고는 레빈은 당신”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소피아는 젖소도 아니고 결혼 후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임신 상태가 아닌 기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막내딸인 알렉산드라를 56세의 나이에 얻었으며, 일찍 죽었지만 막내아들인 이반을 얻은 것도 나이 60살 때 일이다.

톨스토이라는 의미가 '거대한, 큰' 이런 뜻이라고 하더군요. 집안의 DNA 때문인지 체력, 건강, 욕망만땅에 지력을 갖춘 문인. 70세에도 젊은이와 다름없는 근력을 지녔다고 합니다.

톨스토이 가족

공식적으로 톨스토이는 모두 9남 4녀(다만 이 중 4남 1녀는 어린 나이에 일찍 죽었다). 하녀였던 아크시니야가 낳은 아들, 티모페는 톨스토이의 마차 운전수, 마구간 지기, 산지기로 평생을 살았다.

가정과 영지 내에서의 절대 군주로 군림하며 이런 독특한 남편 때문에 소피아는 대단히 힘든 삶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유모도 없이 혼자서 13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물론 톨스토이의 글을 읽고 필체를 교정하는 작업을 맡아야 했다고..

The family circle at Yasnaya Polyana. c. 1905

고리키는 톨스토이와의 첫 만남에서 "예수를 만난 듯했다"라고 말했는데, 톨스토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소피아. 그의 글과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에 아내 소피아는 '대문호, 성인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며 그가 혐오스럽고 막 대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위대한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 악처'라는 수식이 붙어 다닙니다. 악녀가 아니라 악처로 만든 거지.

그 이전에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그의 행동과 아내도 모르게 그의 저작권과 판권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하자 갈등이 촉발됩니다. 백작의 피를 이어받어 대 영지의 지주로 평생을 부족한 것 없이 살아온 그에게 아내의 돈 문제와 관련된 싸움이 지긋지긋해지죠.

소피아의 입장에서는 노년에 겨우 대문호의 아내로서 존경도 받으면서 편안하게 사는가 했더니 언급한 것처럼 갑자기 남편이 모든 재산을 버리고 뛰쳐나가려 하니 분통이 터질 만도 하지.

노년의 부부

결국 대판 부부 싸움을 벌인 이후 나이 82세, 늘그막에 가출을 시도하였으나, 아스타포보 기차역의 역장실에서 폐렴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 역은 톨스토이를 기리기 위해 1918년 '레프 톨스토이'역으로 개칭되었고 또한 톨스토이가 사망한 시간인 6시 5분으로 맞춰진 시계가 있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중독을 다 겪었던 톨스토이. 금욕은 쉽다. 원래부터 안 했던 것이라 계속 안 할 수 있죠. 하지만 중독, 이게 힘들죠. 이미 한번 빠진 것에서 나오기가 힘들죠. 우리 뇌의 도파민은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걸 무지 싫어해서 방해하거든요.

마약 중독이었던 프랑수아 사강은 자기 변론으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이런 의미의 문장을 마치 '자유, 내 인생은 나의 것'처럼 자극적이고 멋져 보이게 포장해서 사용하고 있으니, 마약은 중독이고 타인에게도 전파시켜 파괴할 가능성이 있으며, 무엇보다 위법입니다.

Nikolai Ge : Portrait of Leo Tolstoy, 1884

50세 이후에 회심한 톨선생은 어느 날 ‘나는 파홈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집니다. 시골 농부 파흄은 그의 단편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의 주인공으로 끝없는 땅 욕심으로 결국 그 땅 위에서 죽어간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유한 삶을 위해서는 열심히 준비했지만, 영혼을 위해서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대영주이자 귀족.. 도덕적인 삶에 대한 갈망, 진정한 종교로의 회귀, 요즘 말로 공황장애 같은 현상이 생긴 거죠. 농민처럼 살 거라면서 채식주의를 표방하지만 고깃국물에 야채 찍어 먹고. 내가 살면서 할 것 다 해봤는데며 '섹스하지 마라, 노름하지 마라, 재산을 내려놓아라,'라며 어릴 적 성병도 걸리고 하녀와 놀다가 결혼을 시키는데 둘의 신혼 방을 자신의 옆방으로 ㅜㅜ. 아, 님아 그 문은 넘지 마오~~

톨스토이 인생을 다소 가볍게 썼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나쁜 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없는 것같이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게 진짜 위선인 거지.

술이 취해 길을 걷다 보면 비틀거리기도 하고 길을 벗어나기도 하죠. 그렇다고 길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이게 맞는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의지도 매우 중요한 거죠. 간극이 위선이 아니라 간극이 없는 듯 행동하며 사는 것이 위선이다. 라고 톨선생을 변론해 봅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이다.

<인생의 길> 톨스토이

Ilya Efimovich Repin

Lev Nikolayevich Tolstoy resting in the forest

1891

톨스토이는 9세에 고아가 됐다. 어머니는 그가 두 살 때 사망했다. 아버지는 1837년 여행 중 살해당했다. 카잔대학에 재수로 입학했지만,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억압하는 대학교 교육 방식에 실망을 느껴서라고 한다. 치안판사도 했고, 농노의 주인이기도 하고, 포병대의 장교, 크림전쟁(나이팅게일이 간호사로 참전한) 에서 공도 세우고.. ‘모든 인간을 사랑하라’는 그의 철학에 매료된 같은 대학 출신인 레닌은 그를 일러 ‘혁명의 거울’이라고 칭송했다.

톨스토이는 82세에 가출한다. 자신이 표방한 것과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것 사이의 간격을 메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부부 싸움에도 지쳤다. 톨스토이 또한 안나 카레니나처럼 역에서 별세했다.

 

Leo Tolstoi on a Soviet stamp.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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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도시 생활을 하는 언니와 시골에서 농촌 생활을 하는 동생의 대화중에 동생 남편 파홈은 “우리 농부들은 땅만 넉넉하다면 악마나 다른 그 누구도 무서워할 것이 없다"라며 편안하고 자유로운 농촌 생활이 좋다는 아내의 말을 거들었다. 이 말을 들은 악마는 ㅋㅋ 그래, 어디 한번 당해 바라며 파홈에게 땅을 넉넉히 주고 그 땅으로 미혹하리라 결심한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땅을 팔기 위해 내놓자 파홈은 그동안 저축한 돈과 친척들에게 빌린 돈으로 그 땅을 샀다. 농사가 잘되어 1년 만에 빌린 돈을 다 갚고 땅 주인이 된다. 행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이 좁다고 생각한 파흄은 비옥하고 넓은 땅을 분양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재산을 팔아 이주했다. 그가 가진 땅은 이전의 세 배가 됐고 살림은 전보다 열 배나 나아졌다. 더 행복했다.

차차 생활이 안정되고 살림이 불어나자 이곳 역시 좁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적은 돈으로 일 년이 걸려도 다 돌아 볼 수 없을 만큼 넓은 땅을 살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땅을 얻는 방법도 간단했다.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원하는 땅을 괭이로 표시하고 해가 지기 전에 시작점으로 돌아오면 표시한 모든 땅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로또다.

 

파홈은 마음에 드는 땅을 표시하며 걸었다. 출발점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놓치기 아쉬운 땅들이 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계속 걸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해가 진다. 흐미야 하며 그는 힘껏 달렸다. 숨이 가빠 심장에 고통이 밀려와 땅을 포기할까 싶기도 했지만 언덕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에 고통을 참고 계속 뛰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앞으로 고꾸라지며 극적으로 시작점에 도착했다. 그러나 파홈은 일어날 수 없었다.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귀에 속삭임이 들리시나요?

"죽어도 좋으니 그런 땅, 아파트들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다"

라는 영혼의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