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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특히 옛 고전속에서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들은 시간이 흘러도

사랑의 원형처럼 인구에 회자되는 커플들이 있다.

로미오와 쥴리엣, 햄릿과 오필리아. 트리스탄과 이졸데,

기네비어와 렌슬럿, 그리고 단테와 베아트리체.

 

 

 

 

Michael Parkes

"Dante and Beatrice"

 

 

몇 일전에 포스팅한 한 여인만을 가슴에 품고 있다 비극을 맞이하는 오르페우스처럼 지고지순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첫사랑의 열병이 있다. 바로 그 불후의 명작 '신곡'을 쓰게 만든 시성 단테의 첫사랑. 단테는 자신이 사랑한 여인 베아트리체를 여신에 버금가는 신성하고 고귀한 존재로 격상시켰다. 누구나다 사랑하는 여인을 그렇게 생각하지만^^

 

단테 (Dante Alighieri : 1265~1321)와 그의 마음속 연인 베아트리체(Beatrice : 1266~1290). 그들은 단지 2번을, 그것도 우연히 만났을 뿐이지만 단테의 가슴속에는 일생동안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아로새겨졌다.

 

 

 

Sandro BOTTICELLI,

Portrait of Dante

1495, Tempera on canvas, 54,7 x 47,5 cm

Private collection

 

 

단테는 르네상스의 요람이며 중세유럽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 귀족출신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라 그리 행복하진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부친대에 와서는 가문이 많이 기울어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지만 장남인 단테만큼은 열성적으로 교육시켰다. 하지만 그의 나이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베아트리체는 피렌체의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로, 시모네 디 발디의 아내가 되었으나 1290년, 24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Dante Gabriel Rossetti

Beatrice, 1871

 

 

단테는 9세 때(1274) 그의 생애와 맞바꿀 운명을 만난다. 부친을 따라간 귀족파티에서 당시 한살 어린 그녀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되고, 그의 서정 시집 '새로운 인생(La Vita Nuova, 1293)'에서 그녀와의 첫 만남의 순간을 '그때부터 내 사랑이 내영혼을 완전히 압도했네' 라고 표현했을 만큼 큐피트의 황금화살이 그의 심장을 관통했던 것이다.

 

Dante Gabriel Rossetti. Beatrice Meeting Dante at a Marriage Feast, Denies Him Her Salutation. 1855. Watercolour on paper.Ashmolean Museum, Oxford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은 9년 후의 일이다.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서부터 그후로 죽을 때까지 영원한 여성으로 그의 마음속에 살아남게 되었다. 그러나 끝내 그녀는 단지 먼 발치에서 밖에 바라볼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야 만다. 당시 피렌체의 명문가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이었던 그녀는 집안에서 정해준 시모네 디 발디라는 남자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토록 절절이 갈구했던 단테의 첫사랑 베아트리체는 1290년 6월 8일,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Henry Holiday(1839-1904)Dante and Beatrice, 1883

 

19세기 영국 화가 헨리 홀리데이가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운명적인 만남을 그림으로 옮겼다.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한 베아트리체가 친구와 함께 강변을 산책한다. 청년 단테는 갈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베아트리체의 모습을 애타게 바라본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낯선 남자의 눈길을 의식하지 못한 채 앞만 보고 걷는다. 화면 배경에는 피렌체의 상징이요, 젖줄인 아르노 강이 유유히 흐른다..

 

 

Dante's Dream of the Time of the Death of Beatrice

"by Dante Gabriel Rossetti, 1871,

Walker Art Gallery

 

가슴속으로만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에서 단테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눈인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슴 떨리도록 사랑했던

그녀 앞에 감히 나서지도 못해서 멀리서 바라봐야 했던 그녀..

말 한번 붙여보지도 못했어도, 손 한번 잡아보지 않았어도,

단테에게 있어 그녀의 죽음은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고통이었고 슬픔이었다.

 

단테는 베이트리체가 죽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The love between them was wholly spiritual;

after her death Dante realised she was more alive than ever."

"우리의 숭고한 사랑은..

그녀가 내 곁을 떠난 후

이전의 어떤 때보다도 내 가슴에 살아있다. "

 

불후의 명작 '신곡'이 탄생하는 시발점이 되는 말이다.

'내 시는 이전에 존재한 적 없고 앞으로도 나오지 못하리.

그것을 쓰기 전까지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않으리.' 라고

죽은 베아트리체를 두고 했던 단테의 약속처럼 '신곡' 은

연인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 인간의 뛰어난 상상력과 결합해

낳은 최고의 창작물 중의 하나이자, 인류 문학 역사상 불후의

금자탑으로 손꼽히고 있다.

 

Rossetti, Dante Gabriel

Beata Beatrix, 1864-70

 

단테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부친이 정혼해 준 젬마와 그 다음해에 결혼, 네명의 자식들까지 두지만 그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여전히 그의 마음은 베아트레체의 것이었다. 그 후 10년 동안 타락한 생활로 방황했으니 첫사랑에 데인 상처가 얼마나 엄청난 거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단테의 청춘은 그렇게 첫사랑의 아픔과 함게 지나갔다...

 

성년이 된 단테는 일찍 관료로 성공하여 피렌체 행정장관으로 재직하던 중,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결국 조국에서 영구 추방을 당한다.

 

 

 

Lord Frederick Leighton

Lord Frederick Leighton (영국 빅토리아조 화가)

Dante in Exile, 1864

 

 

19세기 영국 아카데미 화가 로드 라이턴경의 <단테의 추방>이라는 그림이다.

화가는 이 작품에서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은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화면 가운데 유령처럼 창백한 표정의 단테가 서 있다. 단테의 얼굴은 돌처럼 굳었고

몸 전체에서 깊은 절망감이 풍겨 나오는듯 하다.

 

화려하게 치장한 베아트리체가 길을 지나치다 문득 고개를 돌려 단테를 바라본다.

그러나 단테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눈길조차 줄 수 없다.

연인의 곁을 떠나야만 하는 고통과 추방형을 선고받은 굴욕감이

바위처럼 가슴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화가는 단테의 불행을 강조하고

보다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베아트리체가 지켜보는

가운데 단테가 생이별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신곡' 은 단테가 조국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후 망명지에서 19년에 걸쳐 완성한 신학적 장편 서사시이다. 1317년 이후로 그가 생을 마치기 직전까지 이방인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는 말라리아에 걸려 1321년 9월 13일 밤 56세로 마침내 파란만장한 일생을 라벤나에서 마쳤다. 필생의 대작 '신곡' 은 죽기 직전 탈고 되었다.

 

Dutch Ary Scheffe

Dante and Beatrice, 1851

Museum of Fine Arts, Boston

 

 

 

'신곡' 은 단테가 조국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후 망명지에서 19년에 걸쳐 완성한 신학적 장편 서사시이다. '지옥' 편과 '연옥' 편, '천국' 편이 각각 33가씩 나위어 총 100가로 구성되어 있다.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동행한 단테의 이 환상여행기는 역대 교황들, 플라톤, 마호메트,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토마스 아퀴나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스타티우스 등 실존했던 인물들과 아킬레우스, 제우스, 미노스 등 그리스ㆍ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물은 물론 솔로몬, 유다, 다윗 등 성서 속 인물까지 등장한다. 단테의 신곡을 통해 서양문화의 모든 특질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대서사시다.

 

 

13세기 후반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 있는 피렌체에서 태어난 단테는 중세적인 교육을 착실히 받았다. 그래서 그가 남긴 글 중에는 라틴어로 씌여진 글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단테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신곡은 라틴어가 아니라 당시 피렌체의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세속어로 씌여졌다. 우리로 치자면 한자 대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으로 신곡을 써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단테의 이러한 작업을 르네상스의 시초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댓글을 보니 16세기의 베이트리체 첸치와 혼동이 있는 듯 하네요.

베아트리체 첸치에 관련된 글을 링크하니 참조바랍니다^^

 

<베아트리체 첸치 과연 누가 그렸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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