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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가나 소설을 소개하면서 빅토리아 시대를 자주 언급했다. 그런 귀족 놀음의 예술을 빼고 나면 그 시절은 영국에겐 최고의 시절이었지만 식민지에겐 최악의 시절이었고, 지혜의 시대이나 또한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시대였으며, 윤리의 시대였지만 막장의 시대이기도 했다.

 

19세기 빅토리아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알마 타데마 (Lawrence Alma-Tadema. 1836~1912)처럼 윤리적인 생활을 하면서 그림과 신념에 몰두한 화가가 있는가 하면 동시대의 화가 중 남녀 문제로 막장이 많다. 도덕을 유난히 중시하던 빅토리아 시대에 '라파엘 전파'라는 급진적 화가들이 모여서 한 짓을 보면 다리파(독일 표현주의)는 기본 원칙이 - 원시로 돌아가자 -니깐 그들의 원칙대로 '원시의 모습대로' 살았다지만, 애들은 걍 막 들이댄다.

엘리자베스 시달의 초상화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Dante Gabriel Rossetti, 1828~1882)

그 중심에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라는 우아한 이름을 쓰는 인간이다. 시달( Elizabeth Siddal)과 동거+ 약혼 생활 10년 내내 여자와 마약으로 마누라 속을 썩이니 시달은 폐렴으로 몸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의 이런 행각에 절망한다. 결국 아편 과다 복용으로 숨졌다. 당시의 관행에 따라 사고사로 처리됐지만. 사실상 자살을 한 것이다. 아내가 죽음을 택하는 날까지 애인과 붙어먹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시달 Elizabeth Siddal (화가의 아내, 일명 " 리찌 Lizzie, 1829-1862)

헌터 : 깨어나는 양심. The Awakening Conscience

1853, Oil on canvas

76.2 x 55.9 cm Tate Gallery, London

 

라파엘전파의 한 축을 형성했던 도덕주의자 홀만 헌트(William Holman Hunt, 1827~1910)는 위 그림에서 몇 가지의 상징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연인과 함께 피아노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빛이 들어오는 순간, 불현듯 성적 접촉에 의한 부도덕성을 깨닫고 소녀는 지금 남자의 무릎에서 일어서고 있는 중이다. 테이블 아래(왼쪽)에는 검은 고양이가 작은 새를 희롱하고 있다. 이는 남성과 여인의 현재의 관계를 암시하는 알레고리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가? 로세티는 동료 화가 헌트(William Holman Hunt)가 여행을 간 사이 그의 약혼녀와 밀회를 나눠 우정을 깨뜨리는 등, 한마디로 리비도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로세티 작 : 제인 모리스 : 릴리트 1868

급기야 친구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 ~ 1896)의 아내인 제인 모리스를 데리고 와서 산다. 근데 몇 년 살다가 그 마누라가 '나 돌아갈래..' 하며 돌아왔다고 윌리엄 모리스는 받아준다. 로세티는 과다 약물복용과 정신분열증으로 힘들게 죽고, 모리스 역시 아내와 친구에게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끝내 치유하지 못했다.

윌리엄 모리스 : Guinevere.1858. 런던 테이트갤러리

위 그림은 아내인 제인 모리스를 모델로 하여 그린 아서왕의 왕비 귀네비어다. 시집 <귀네비어를 위한 변명>에서 모리스는 귀네비어가 랜슬롯과의 간통으로 인해 왕국을 파멸로 몰아넣은 여인이 아니라 자신의 열정에 충실한 떳떳하고 당당한 여자로 묘사하다가... 모리스는 기네비어와 비슷한 운명의 길을 걷고 나서는 그림의 주제가 마음에 걸렸는지 곧, 제목을 "아름다운 이졸데"로 바꿨다는군. 남의 이야기야 쉽게 하지, 지 앞에 닥친 이야기면 이렇게 됨.

한때 대한민국 가요계에 대마초가 유행처럼 번질 때가 있었다. 젊은 가수들의 멘토이자 전설 중 몇몇이 이를 하자 '저 정도는 해줘야 가수지'하는 일종의 모방, 그리고 모럴 헤즈드가 온다. 친구 중에도 가장 말발 센 넘이 뭘 하면 어어~ 하다가 그놈 따라 담배도 배우게 되고, 나쁜짓도 같이 한다. 점잖하기로 유명한 밀레이(존 에버렛 밀레이 Millais, John Everett 1829~1896)의 경우가 그렇다. 라파엘전파는 당시 철없는 반항아 취급받으며 미술계에서 환영받지 못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존 러스킨이 그들을 옹호하고 나선다. 존 러스킨이 누군가.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Ophelia, 1851~2, Tate britain Gallery London

오필리아 그림(로세티의 아내, 시달이 모델)으로 유명한 밀레이는 친구이자 후원자의 아내를 모델로 그림 그리다<1746, 방면 명령> 이혼시키고 결혼한다. 엄청난 스캔들이 된다. 왜냐하면 그 친구가 바로 시대의 사상가이자 비평가며 라파엘전파의 옹호자인 존 러스킨이기 때문이다. 러스킨은 아름다운 아내인, 에피와 결혼했지만 7년 동안 잠자리를 안 한다. 대신 다른 남자와 자라며 짝을 찾아주기도 하고 - 이를 안 에피의 오빠가 열받아서 내 여동생이 창녀냐며 항의 편지도 보낸다.

밀레이 : Trust Me // Yes

 

이혼 법정(당시는 이혼하기 힘들었음)에서 '왜 마누라를 그토록 오랫동안 처녀로 남겨 뒀느냐'라는 심문에, 여자의 몸에 체모가 있다는 것을 몰랐단다. 자신은 집에 걸린 비너스 그림처럼 매끈한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존 러스킨은 로리타 전문가가 된다. 화가와 에피는 불륜, 이혼이라는 산고 끝에 결혼해 8명의 자식을 놓고 행복하게 살.. 빅토리아 여왕의 갈굼(40년 동안)을 엄청 받고 나서 방면되어 잘 살았다.

Flaming June

1895. Oil on canvas. 120.6 x 120.6 cm

Museo de Arte, Ponce, Puerto Rico

 

그런 의미에서 레이턴 경(Lord Frederic Leighton, 1830 ~ 1896)은 용의주도하다. 도로시 딘(Dorothy Dene, 1859~1899)라는 어린 여자의 양아버지를 자처하며 가족들까지 집으로 델꼬와서 모델을 시킨다. 뭔 놈의 양아버지가 맨날 천날 딸래미 누드를 그리냐.. 하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 죽으면서 그녀의 가족들에게도 엄청난 유산을 남겨준다.

 

The Bath of Psyche. 1890

 

그림은 큐피터와 결혼을 앞둔 프시케가 신혼 밤을 치르기 위해 목욕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당시 하천민 출신의 도로시의 입장에서는 계급, 명성, 능력, 재력 등.. 모든 면에서 레이턴 경은 자신의 신분을 한 번에 바꿔줄 수 있는 신(큐피터)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레이턴 경 사후 3년 만에 도로시도 죽음을 맞이한다.

The Depths of the Sea 1886

에드워드 번 존스 ( Sir Edward Coley Burne-Jones, 1833~1898 )

중세 문헌과 미술을 공부하던 철학적이고 내성적이며 조용한 번 존스는 ​1856년 라파엘 전파의 화가 로세티를 만나 학교를 그만두고 화가의 길로 접어든다. 그러다 파리에서 이혼하고 돌아온 잠바코를 모델로 그림 그리다 불륜을 저지른다. 소심한 인간이다 보니 마누라한테 들키자 둘이 죽자고 강변까지 갔는데, 물이 너무 차가워서 몸을 못 던지고 헤어진다. 그러면서 용서의 나무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그림을 그린다.

마리아 잠바코 (Maria Zambaco, 1843-1914)

 

 

번 존스 : 죽음같은 사랑, 마리아 잠바코

Phyllis and Demophöon 위 그림은 그리스신화 데모폰과 필리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트로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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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전파​ Pre-Raphaelite Brotherhood 란?

프레라파엘리티는 1848년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윌리엄 홀먼, 존 에버릿 밀레이를 중심으로 한 작가들이 런던에서 단체를 창립하면서 시작되었다, 프레라파엘리티는 문자상으로 ‘라파엘로 이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들은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의 라파엘로로부터 회화가 미를 위해 진실을 희생하기 시작했다고 보고 당시의 아카데미즘과 빅토리아 왕조의 관습주의 및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의 부패에 항거하며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순수하면서도 프리머티브한 미술, 즉 라파엘로 이전의 순수한 미술로 복귀할 것을 주장했다.

10여 년에 불과한 짧은 기간 동안 지속된- 모임의 주체인 로세티가 개판쳐서 -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미술운동이다. 하지만 이 운동은 활동 당시보다는 오히려 그 이후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당대 최고의 사상가였던 존 러스킨 John Ruskin(1819~1900)이 이 운동을 적극 지지했고, 윌리엄 모리스는 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예술공예운동을 펼쳐나갔으며, 19세기 말에 유행한 아르누보 양식의 장식적인 꽃이나 곡선, 아름다움 여인상 역시 이 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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