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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 파르나소스 디테일 / 바티칸

사포와 파온

고대 그리스의 최고 시인 중 한 사람인 사포(Sappho 또는 Psappho, 기원전 7~6세기경)는 레스보스 섬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귀한 신분에 재능과 용모가 빼어난 그녀는 뭇 남녀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생애의 대부분을 자신의 고향에서 시를 지으며 지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로렌스 알마 타데마 Sir Lawrence Alma-Tadema (1836-1912)

Sappho and Alcaeus. 1881년

턱을 괴고 경청하는 사포는 알카이우스의 시에 깊이 매료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포와 서정시인 알카이오스는 음악과 함께 서로 시를 낭송하며 시간을 자주 보냈다. 그림을 보면 사포의 주위에는 어린 여인들이 있는데 이는 레즈비언으로서 사포의 존재를 암시하기 위한 화가의 연출처럼 보인다. 레스보스 섬이 레즈비언의 어원이라고도 한다. 당시는 남녀 구분 없이 양성애자들이 많았다.

그리스 레스보스 섬. 완전 터키에 붙어 있음.

빅토리아 영국 화가 John william Godward

In the Days of Sappho. 1904

어느 날 사포는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여신에게 바칠 시를 쓰고 있었다. 같은 시각, 신전을 찾은 행색은 초라하고 못생긴 선원 파온이 사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누군들 안 그럴까.. 다들 동경을 했지만 파온은 아프로디테에게 소원을 빈다, '사포의 눈에 자신이 젊고 잘생긴 청년의 모습으로 보이도록 해달라'는.. 턱도 없는 그런 소원을

자신을 찬양하는 시구에 기분이 좋아진 아프로디테의 귀에 웬 남자의 목소리가 같이 들려오자 들어보니, 주제를 알아야지 ㅉㅉ 하는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간절히 비는 청년의 청을 들어주었다. ​이는 마치 가장 아름다운 아프로디테 자신이 추남인 헤파이스토스의 아내가 된 점도 상기했으리라.

프랑스 신고전주의 자크 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Sappho and Phaon / 1809년

The Hermitage, St. Petersburg

며칠 후 신전으로 사포가 오자 아프로디테가 갈쳐준 대로 파온은 한쪽 구석에 몰래 '존잘멋‘ 하게 보이는 향'을 피우고 고백한다. 젊고 잘 생기고 훤칠한 파온의 절절한 고백에 황홀해진 사포는 파온과의 사랑을 자신의 시처럼 이상적인 사랑으로 생각하고 만다.

그러나.. 한참을 사랑을 나누던 중 향로의 연기가 사라지자, 파온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파온의 얼굴에 기대어 사랑의 달콤함을 음미하던 그녀는 눈을 떠서 갑자기 변한 파온의 본 모습을 보고 놀라서 실신을 한다. 자신의 본 모습에 놀란 사포가 실신하자 파온은 죄스러움과 함께 좌절감을 안고 떠난다.

프랑스 화가 조각가 샤를 멘진 Charles, Auguste MENGIN (1836 – 1933)

SAPPHO. 1877 년

얼마 후 정신을 차린 사포.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랑을 고백하던 파온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를 포기할 수가 없었던 사포는 상사병에 걸리고 만다. 사포는 자신의 상사병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더 이상 베 짜기를 할 수 없어요

차라리 아프로디테를 탓하세요. 그녀처럼 부드럽게

저 소년에 대한 사랑으로 나를 거의 죽게 만들었으니까요

- 아무 소용이 없어요. 사포 -

 

19세기 스페인 화가 미구엘 셀바(Miguel Carbonell Selva) / 사포의 죽음. 1881년

 

파온의 잘 생긴 외모에 자신의 마음이 마법에 걸렸으나, 이후 진실로 파온을 사랑하게 된 사포는 그가 떠난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사포가 레우카스 절벽의 일명 '연인들의 투신 바위(Lover's leap)'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그렇게 하면 죽지도 않고 상사병도 낫는다는 속설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고전주의 앙투안 장 그로 Antoine-Jean Gros / Sappho at Leucate

1801. Oil on canvas, 122 x 100 cm

Musee Baron Gérard, Bayeux

 

 

이 사랑 이야기를 그린 그림들은 사포가 마치 한창 젊은 시절에 사랑의 상사병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린 듯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약 55세쯤 될 때이다. ​자살을 택한 이유도 그녀 특유의 간결하고, 아름다운 시어에 더 이상의 영감을 얻을 수 없었고, 자신이 쓴 시처럼 영원히 젊게 살 수도 없음에, 또한 자신의 시어의 행간에서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결말을 자신 스스로가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프랑스 상징주의 구스타프 모로 Gustave Moreau (1826-1898) / Sappho

1871-72. watercolor on paper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앙리 마티스의 스승이기도 한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프 모로'는 사포의 극적인 죽음을 살로메만큼 다양한 장면으로 여러 장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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